"으음~ 오늘은 물이 안좋네."
잘빠진 검은 바이크에 기대 선 화려한 남자, 담은 스마트폰 화면을 연신 슬라이드하고 있었다.
모발이 얇아 푸스스 퍼진 긴 머리칼과 잘생겼지만 어딘가 껄렁해보이는 인상, 삐딱한 자세까지.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놀기 좋아하는 가벼운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넘기며 '물이 좋지 않다'평가하는 화면이야 누가 보아도 뻔할 것이다. 남자나 여자의 얼굴이나 몸 사진이 걸린 만남어플. 주로 원나잇이나 가벼운 만남을 위한 그런 류의 어플말이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들 하지만, 담은 생긴대로 인스턴트 만남을 반복하거나, 애정결핍에 불안정한 사람을 애인삼아 금전을 축내는 일을 즐겨했다.
흔히들 말하는 제비족. 그 단어의 의인화같은 사람이 바로 담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고있는 화면을 만남어플같은 시답잖은 것과 비교하면 실례였다.
<하급데몬-정신계/2인 이상/150만원/정신력 보강장비 필참>
<하급데몬-물리계/2인 이상/100만원/비고>
<하급데몬-물리계/2인 이상/300만원/디비니타스키즈 동행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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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 정신력 보강장비.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단어들이 이어졌다. 게임의 공대같은 것이라도 하냐고? 완전히 틀린 이야기였다. 이건 확실하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으므로.
인간의 악덕을 부추겨 세상을 좀먹는 어둠, 악마. 비밀리에 그들을 사냥하는 게 통칭 악마사냥꾼들이었다.
"아, 다 귀찮게 단체로 가라 그러네."
이런 보잘것 없는 인격의 소유자라도 말이다.
데몬, 그중에서도 고작 하급데몬이나 잡는 악마사냥꾼들이란 대체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조금의 위험이 수반되지만 단번에 큰 돈을 땡길 수 있는 일을 소개받은 이들이었으므로.
당연하게도 목숨이 오가는 일이더라도 금새 감각이 마비되어 일을 지속할 수 있을 소수의 이들을 거르고 걸러 접근하는 것이었지만 담같은 이들에게 그런 건 그닥 중요치 않았다.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기에 게임같은 감각으로 접근하게 된다.
위험도로 인해 측정된 2인 이상이 동행해야 한다는 제약도 귀찮게 여기게 될 만큼.
"우선은 이걸로 할까."
그의 손이 터치한 것은 <하급데몬-물리계/2인 이상/300만원/디비니타스키즈 동행 권장>이라 적힌 글이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걸린 돈이 높기 때문이었다.
잠시 로딩중이라는 동그라미 표시가 돌아가던 화면에는 금방 경쾌한 폰트로 '매칭완료!'라는 글자가 떴다. 운 좋게도 비슷한 타이밍에 지원한 사람, 혹은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집합 위치도 가깝고. 그럼 가볼까."
네비게이션 모드로 전환된 화면을 거치대에 끼운 담이 익숙하게 헬멧을 쓰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부웅.
시동을 걸자 묵직한 배기음이 울리며 차체가 진동했다.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심장까지 전해지는 거대한 진동을 남기며, 바이크가 도로를 가로질러 쏘아져나갔다.
끼익.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마찰하는 소리를 남기며 바이크가 멈춰섰다. 자신의 애마를 갓길에 세워둔 담이 헬멧을 벗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합장소라 해도 인적이 드문 뒷골목 등인지라, 바로 눈에 띄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가죽재킷 안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언제나와 같은 든든한 존재감을 느끼며 담은 가볍게 걸음을 뗐다. 한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기에.
턱 끝에서 떨어지는 칼같은 붉은 단발. 담보다 훌쩍 큰, 흔치 않은 키와 커다란 체격. 그리고 스스로의 얼굴에 익숙해진 그에게 조차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얼굴.
'몸이 저렇게 좋은데, 얼굴이 귀엽네.'
이런 걸 베이글이라 하던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도 담의 눈과 머리는 빠르게 상대를 스캔했다.
청회색 눈동자는 여러 빛깔이 섞인듯 특이했고, 살짝 아래로 쳐진 눈꼬리와 빽빽한 속눈썹 탓에 멍해보이는 인상이었으나 분명하게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투명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뽀얀 피부와 촉촉해보이는 분홍색 입술은 분명한 생기를 띠었으나 굳은 표정 탓에 인형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아, 입술 밑에 점이 있네.'
이런 것을 화룡점정이라 부르던가. 합격. 얼굴은 확실한 합격이었다.
앳된 티가 나는 예쁜 얼굴과 달리 떡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흉통, 전체적으로 두텁다는 느낌을 주는 바디라인. 보여주기 위해 지방을 깎아내어 만든게 아닌 적절한 지방이 섞여 자연스레 형성된 큰 체격과 근육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한 마디로 눈앞의 상대는 담 취향의 베이글 미인이었다.
1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상대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 담의 눈이 사르르 접히며 미소지었다. 여자도 남자도, 정체성이나 성적지향과 상관없이 미를 아는 이라면 호감을 가질법한 미소.
"안녕, 이름이 뭐예요? 난 담이라고 해요. 성을 붙이면 여담. 재밌는 이름이죠?"
듣기 좋은 부드러운 미성이 친근하게 말을 붙인다. 담은 어떻게 해야 타인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여담."
딱딱한 어조. 하지만 목소리는 저음이면서도 산뜻한 구석이 있었다. 오랫동안 노래라도 해온 걸까. 오랜시간 예쁘게 가다듬은 목소리라는 인상이 느껴졌다.
"네. 기억에 잘 남는 이름이죠? 다들-..."
"분홍색이군."
"머리색 말인가요? 당신하고 비슷한 류의 색이죠. 훨씬 밝긴 하지만."
"아니, 눈."
분홍색 눈. 담은 이 말이 낯설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밝은 갈색이라고 인지하나 악마사냥과 관계있는 사람 중 일부나 악마들은 그렇게 보았다. 물론, 담 스스로도.
"다들 밝은 갈색 정도라고 하던데. 당신 눈에도 보이나봐요. 하하. 꽤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그럴지도."
부러 마지막 말에는 장난기를 섞어 농담임을 티냈건만, 상대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표정도 그렇지만 성격은 꽤 재미없는 부류인게 확실했다. 뭐, 그런 상대도 제법 좋아하기는 했다. 여러 의미로 말이다.
더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은 없는지, 상대는 담을 지나쳐 악마가 있다는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짤랑... 그의 허리께에서 흔들리는 특이한 조형의 십자가를 보고서야 담은 그가 협회직속의 성당출신임을 깨달았다.
'그럼 재미없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성직자같은 생활을 해왔으니 별 수 없을 것이다.
"최노엘."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가볍게 뒤따라걷는 그에게 상대가 말했다. 추측은 아무래도 사실인 듯 했다.
빙고. 입모양으로 중얼거린 담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례명으로 지은 이름인가요? 노엘. 예쁘네요."
"..."
돌아오는 답은 없었지만 말이다.
누군가를 꼬시는 일에는 인내심이 중요한 법이다. 담은 오랜만에 만난 어려운 상대를 즐겁게 여겼다.
낡은 상가 건물로 들어선 노엘은 작은 상자에서 명함 크기의 청동빛 종이 하나를 꺼냈다. 상자 옆면에 종이 끝을 문지르자 불이 붙으며 그만한 것을 태워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만큼 대량의 연기가 흘러나왔다.
악마와의 전투에서 일반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도구로, 흔히들 몽환향이라 불렀다. 악마가 씌이거나, 악마가 아닌 일반인은 연기를 조금이라도 맡는 순간 잠들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악마사냥꾼들은 몽환향에 면역을 가지게 해주는 향낭을 소지해 효과를 피했다.
"5층과 옥상을 쓰는 카페에 파고들었다고 했죠? 높다~."
잡담을 걸면서도 담은 가죽재킷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대악마용으로 제작된 총과 탄약이 바로 담같은 일반인도 악마와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손에 착 감겨오는 그립을 쥐자 뭐든 할 수 있을듯한 고양감이 차올랐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죽어나가는 악마의 모습이란 꽤나 전능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으므로.
두 사람이 5층 카페 내부에서 이어지는 옥상계단을 오를 즈음, 불쾌한 기운이 발을 무겁게 만들었다. 끈적하게 사람을 옭아매는 기운. 악마의 숨결이었다. 이는 데몬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정체를 숨기기를 관뒀다는 뜻과도 같았다.
"눈치도 빠르기는."
하지만 도주의 위험은 적었다. 악마란 기본적으로 영역을 중요시하기에 악마의 힘을 개방한 채 다른 악마의 영역일지도 모를 곳으로 가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이었다. 운이 나쁘다면 악마와 사냥꾼 모두에게 공격당하는 결말이니까.
느긋하게 생각하는 담과 다르게 노엘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도망가지도 않을텐데요, 너무 힘뺄 필요 없지 않아요?"
"확률이 0은 아니다."
"빡빡하긴."
담 또한 걸음을 서둘렀다. 제 취향의 남자를 혼자보냈다 괜히 안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싫었다. 미운털이 박히면 큰일이잖은가.
경치가 좋다곤 할 수 없으나 그럭저럭 괜찮은 분위기였을 루프탑 카페는 거미줄을 닮은 악마의 날개로 뒤덮인 채였다.
'날개에 닿으면 귀찮아지겠어. 공격은 어떻게 오려나.'
쨍-!!!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날개 사이에 돋아난 돌기에서 발사된 가시가 유리창을 깨트렸다.
"아하. 이런 식."
탕, 타앙! 담의 손에 들린 총에서 연신 불꽃이 튀었다. 돌기를 노리고 쏘아낸 의도가 선명한 탓일까. 쩌어억 끈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붙어있던 날개가 떨어지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예상한 범위 밖이었으나 악마와의 싸움은 언제나 그런 법이었다.
"그래도 바닥에 지뢰는 덜었네요. **디비니타스키즈와** 오는 게 권장사항이었는데, 무언가 알아낸 건 있나요?"
노엘을 보호하듯 앞장 선 담은 남은 총알의 갯수를 계산했다. 항상 마구잡이로 쏘아대긴 했으나 갯수를 세는 걸 잊은 일은 없었다.
"아직. 조금 더 파악해야할 것 같군."
"그럼 말 좀 걸어볼게요."
"..."
집중하는 표정. 담은 노엘의 얼굴을 힐끔 돌아본 뒤 악마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돼? 약점은? 날개가 그 꼬라지니 날지는 못하려나?"
선명한 도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