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탁, 탁, 세 사람의 발걸음이 연구팀 사무실에 디뎌졌다. 이번에 연구팀에서 출발한 이들은 B조. 언제나와 같은 정예팀의 복귀였다. 늑대를 닮은 가면을 쓴 사내는 자신의 옆에 선 두 사람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음, 둘 다 보기엔 멀쩡하네. 늑대가면을 쓴 사내, B조 조장은 자연스럽게 정장 포켓에서 자신의 정예팀 꿈결 수집기를 꺼냈다.
"오늘도 대단하십니다! 신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이거?"
곽제강 연구원. 얼마 전 수석으로 입사한 연구팀의 신입이었다. 그리고 이 연구원이 자신에게 어떤 콩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는지, B조 조장은 잘 알고 있었다. 따라붙는 찬사도, 자신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마음도 그에겐 일상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누군가는 매너리즘, 혹은 오만이라 부를 터였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있을 뿐인 것을 어찌 오만이라 평할 수 있을까. 매너리즘은, 아주 틀린말은 아닐지도 몰랐다. 인생을 관성에만 맡기진 않았지만 경향성이나 타성이 생긴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도 없었으니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새로 발견된 특이사항이라던가..."
"제강 연구원, 잠시. 그렇게 안 보채도 선물은 가져왔으니 말이야.."
토라진 티가 잔뜩 나는 얼굴로 제강이 물러섰다. 언제 봐도 얼굴에 전부 드러나는 애란 말이지. 속으로 웃음을 삼킨 B조 조장은 다시 한번 조원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들 이상하거나 다친 곳은 없는지 한번씩들 더 확인해보고. 오염된 것 같으면 바로 보고해야하는 거 알지?"
그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형상을 한 가면을 쓴 이들이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사지를 움직여보고, 구구단을 외워보는 등의 간단한 인지테스트를 스스로 한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 상태를 보고했다.
"이상 없습니다."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연구팀 사무실에 있으니 이상징후가 있는지 바로 검사할 수 있다지만 여의치 않을 때도 있으니, 간단한 자가점검일 뿐이더라도 습관화 할 필요가 있었다. 설령 스스로는 이상함을 못 느끼더라도 같은 조원들이 알아챌 수 있으니 말이다. B조이니만큼 이런 부분은 더 기민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좋아. 당장 눈에 띌만한 특이사항은 없었고, 나머지는 서면으로 보고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뒤 다가온 연구팀의 과장에게 꿈결 수집기를 건넨 B조 조장이 간단히 보고했다.
"맞아, 이번에 연구팀에서 예측한 것 중에-..."
"저..."
연구팀 과장의 말을 끊고 제강이 끼어들었다. 걸치고 있는 하얀 가운을 꼭 쥐고있는 것이 상당히 초조한 듯 싶었다.
"기다려."
B조 조장이 손을 들어 제강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내가 개도 아니고..."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였지만 아직이라는 뜻을 숨기지 않은채 지그시 바라봐주자 그의 말관 달리 제강이 꼬리내린 개처럼 물러났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걸까. 기다리라고 했으니 조금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좋을텐데. B조 조장은 자신의 앞주머니에 들어있는 사료를 생각했다. 사료(史料)와 사료(飼料) 발음도 어떻게 이렇게 겹칠까. 아직 갓 입사해 어린 신입임에도 제강은 범상치 않은 기질로 연구팀 내에서도 대하기 퍽 어려운 존재였건만, B조 조장에겐 하룻강아지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다. 지금도 자신의 사료를-비록 그것이 위험천만한 괴담의 부산물이라 할지라도-달라며 낑낑대고 있지 않은가.
"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큰 변화를 보지 못한 것 같네요. 너희는 어때?"
"바로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만..."
한참을 다른 조원들과 함께 연구팀 과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B조 조장은 이야기가 마무리 될 즈음에서야 제 옆에서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는 제강을 바라보았다. 위아래도 모르고 대드는 하룻강아지는 버릇을 잡아주어야 했지만 '기다려'를 아는 하룻강아지는 조금 기어오르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제강연구원 차례네. 이걸 기다린 거 맞지?"
B조 조장이 정장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정확히는 손수건으로 감싼 괴담의 부산물을.
제강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빛났다. 어서 달라는듯 얌전히 내밀어지는 두 손에 손수건을 올려두자 한시도 참지 못하고 손수건을 들춰보았다. 연파란 손수건을 배경으로 늑대를 닮은 오브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그마한 나무조각처럼 보이는 그것은 꽤나 간소화된 형태로 빚어져 있었다.
"오, 이런 걸! 어디에 어떻게 있던 겁니까?"
혹시 주요한 역할을 하던 것일까 기대로 가득찬 눈동자. 하지만 B조 조장은 언제나 여유가 되는 한에서만 어둠을 건드렸다. 가끔은 저 기대에 부응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긴 했지만. 자신과 조원의 안위를 가장 우선해야지 않겠는가.
"이번에 들어간 어둠은 여러 형태로 장소가 변하잖니. 그 중에서..."
"변하지 않던 것 중 하나입니까?"
"으응, 그건 아니구. 변한 물건들 중 하나야."
일순 실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은 자꾸만 놀리고 싶게 만들었다. 자신이 유독 사람의 감정을 기민하게 알아챈다곤 하지만, 제강은 잘 읽혀도 너무 잘 읽혔다. 어린아이를 놀리는 어르신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변하지 않는 건 멋대로 가져오기 좀 그래서 말이야. 다음 탐사에 영향이라도 가면 곤란하구..."
"예, 예. 그렇지요."
물건을 조금 가져오는 일 정도로 매뉴얼에 지장이 갈 정도로 어둠이 변화하진 않겠지만, 괜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자신은 괴담을 탐색하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월급을 받기 위해 다니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걸로는 뭘 하는 거니?"
"괴담을 파악한다고 해야할까요. 본질을 찾아내는 거지요."
"이렇게 하찮은 걸로?"
"작은 조각에 불과할지라도, 이것의 끝의 끝까지 파고들다보면, 결국 이치를 알아내지 않겠습니까? 괴담의 본질이자 이치, 진리를 알게 된다면 어쩌면 직접 원하는 괴담을 만들어내는 일도..."
제강의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B조 조장으로선 솔직히, 왜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둠이니 괴담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걸. 자신에겐 그저 업무의 일부일 뿐이었다. 들어가서 탐사하고, 꿈결을 수집하며 가끔은 매뉴얼을 작성하기도 하는.
뭐, 옥상에서 담배를 한대 다 피울때까지 끝없이 조잘거리는 제강은 조금 귀여웠지만.
***
어느덧 시간도 늦은 밤, B조 조장은 퇴근을 하는 대신, 근처 음식점에서 식사를 포장했다. 엘리베이터에 타 누르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연구팀의 사무실이 있는 층. B조 조장은 불꺼진 연구팀 사무실 속, 유일하게 모니터 불빛으로 빛나는 좌석을 찾아갔다.
"제강아."
"아,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우리 사이에 그런 이유가 필요한가?"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안경을 고쳐쓰며 멋쩍은 기색을 내비치는 제강에게 B조 조장이 포장해온 오므라이스를 건넸다.
"밥. 저녁도 안먹고 일하고 있을게 뻔하니까."
봉투에서 용기와 수저를 꺼낸 제강은 예상 외의 메뉴에 눈만을 깜빡였다.
"오므라이스...?"
"응. 오므라이스를 보니까 제강이가 생각나더라구."
"감사합니다..."
보통 어린애들이 좋아하니까 생각났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려나. B조 조장은 가만히 제강이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서 먹고 하나라도 연구를 더 진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의욕이 넘치는 애들은 이래서 문제였다. 일이란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챙기지 않는 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인데.
"있잖아, 제강이는 괴담의 본질이 파고들고 싶댔잖아?"
"예. 당연한 것 아닙니까. 진리를 찾는 것이야말로 연구자의 숙명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연구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런 말을 진심으로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젊음의 치기일까, 혹은 곽제강 개인의 광기일까.
"그럼, 내가 다음 탐사에서 더 본질에 가까운 걸 구해오면 좋겠네?"
"당연하죠!"
"그래, 그럼 우리 제강이를 위해 노력하는 걸로. 다 먹었으면 정리하고 들어가자."
"벌써 말입니까?"
"벌써라니. 밤이 깊었어."
***
B조 조장은 자신의 손에 들린 비디오 테이프를 들어 제목을 확인했다. '세계 우수 명작 동화'.
***
곽제강은 검고 거대한 몸체에, 샛노란 눈과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주둥이가 셀 수 없이 달린 늑대... 혹은 늑대와 비슷한 무언가를 내려다 보았다.
'그럼, 내가 다음 탐사에서 더 본질에 가까운 걸 구해오면 좋겠네?'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